막간: 끊긴 전화

목요일 밤, 서연의 휴대폰에 「김민준」이 떴다. 민준이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서연아, 나… (지직) …토요일… (지직) …저녁에… (지직) …시간…

뭐? 하나도 안 들려. 너 어디야?

지하철! 터널이라… (지직) …옷 좀… (지직) …차려…
통화는 거기서 끊겼고, 다시 걸어도 안내 음성만 나왔다. 서연은 살아남은 낱말 넷을 늘어놓고 밤새 맞춰 보았다. 토요일, 저녁, 시간, 차려입고. 어떻게 이어 붙여도 같은 문장이 나와서, 그게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라운지. 서연이 먼저 와 앉아 있는데, 강도현이 학회 포스터 출력본을 들고 들렀다.

서연 씨, 포스터 최종본 나왔어요. 토요일 오전 세션이니까 아홉 시까지 와요. 끝나고 연구실 사람들이랑 저녁도 같이 하고요.

오전은 갈게요. 그런데 저녁은… 비워 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요.
그때 라운지 문으로 들어오던 민준의 귀에 「토요일」「저녁」「같이」 세 낱말만 들어왔다.

아, 토요일 저녁에 선배랑 약속 있구나. 그럼 됐어. 어제 전화는 잊어버려.

뭐가 됐는데? 너 아직 한 문장도 끝까지 말한 적 없어.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민준 씨도 시간 되면 포스터 보러 와요. 서연 씨 이름이 맨 앞이에요.
도현이 나가자 민준은 괜히 유자차 뚜껑만 만지작거렸다. 반가워야 할 소식인데 「서연 씨 이름이 맨 앞」이라는 말이 귀에 오래 남았고, 이번에는 점심 탓으로 돌리기엔 아직 아침이었다.

다시 말해 봐. 이번엔 터널 말고 여기서.

…토요일 저녁에 아는 분들이 여는 연말 파티가 있어. 엄마가 친구를 한 명 데려오래. 옷은 좀 차려입어야 하고.

그 친구가 나야?

응. 너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런데 선배랑 약속이 있으면…

학회는 오전이야. 저녁은 원래 비워 둔 거고.

비워 뒀어? 왜?

…터널에서 끊긴 말이 궁금해서.

그럼 이번엔 안 끊기게 세 번 말할게. 토요일 저녁 일곱 시. 토요일 저녁 일곱 시. 토요일 저녁 일곱 시.

한 번이면 알아들어. 여긴 터널이 아니잖아.

아, 그리고 안경은… 아니다, 편한 대로 와.

안경이 왜?

아무것도 아니야. 모닥불 옆에서 내가 너를 못 알아본 게 아직도 좀 창피해서.
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집에 가는 길에 서연은 옷장 맨 안쪽, 한 번도 입지 않은 초록 드레스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