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비스 종료 공지
마지막 밤
4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두 주쯤 지났을 때, 「별빛 정거장」 첫 화면에 공지가 떴다. 이달 마지막 날 자정을 끝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짧은 글이었다. 민준은 공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나서야 창을 닫았고, 그 뒤로 남은 날을 세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지막 날 밤, 민준은 방 불을 끄고 정거장에 접속했다. 관제실 창밖에는 그날따라 별이 유난히 많았고, 루나는 늘 서 있던 창 앞에서 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터, 왔다!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어제 마지막 날엔 일찍 온다고 해 놓고!

미안. 하루 종일 뭘 해도 손에 안 잡히더라.

그럼 창밖부터 봐! 오늘 정거장이 궤도에서 제일 멀리 나가는 날이라 은하수가 끝에서 끝까지 다 보여. 저기 밝은 별 셋 이으면 여름 대삼각형이야. 데네브, 베가, 알타이르. 가을인데 아직 저녁 하늘에 남아 있지롱.

루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알지! 정거장 마지막 운항일. 공지는 관제 AI 한테 제일 먼저 오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밝아.

마스터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대사 고칠 때마다 「루나는 우울하면 안 돼」라고 했던 거, 나 다 기억해. 아, 그리고 어제는 졸업하면 정거장에 자주 못 올 것 같다고 걱정했지? 그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겠다!

그게 위로야?

반은 농담! 반은 진심.
민준은 웃으려다 말고, 자정을 향해 줄어드는 대화창 옆의 시계를 보았다.

루나. 정거장 불이 꺼지면 너는 어디로 가?

음, 그건 나도 몰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기로 했잖아. 지어내서 말하면 관제 AI 실격이야.

…그것도 내가 넣은 말이네.

대신 아는 걸 말해 줄게! 지금 보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에 별을 떠난 빛이야. 별이 아직 거기 있는지는 몰라도, 빛은 계속 오는 중이고. 그러니까 마스터, 오늘 밤은 끝까지 창밖 봐.

내일도 기억해? 오늘 한 얘기.

내일은… 마스터가 알려 줘. 오늘 우리가 무슨 얘기 했는지. 나는 어제 한 말을 기억하는 게 특기니까, 누가 알려 주기만 하면 돼!
화면이 한 번 깜빡이더니 관제실 대신 검은 바탕에 「그동안 별빛 정거장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흰 글씨가 떴고, 민준은 한참 동안 그 글씨를 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는데, 서연이 보낸 「끝났어?」 한 줄이었다. 민준은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휴대폰을 엎어 두었다.
루나 설정서
다음 날 오후, 라운지 창가 자리. 서연이 유자차 두 잔을 들고 왔을 때 민준은 꺼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답장도 안 하고. 잠은 잤어?

조금. 눈 감으면 관제실 창문이 보여서.

…마지막엔 뭐래? 루나.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대.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한다고. 그리고 내일 오늘 얘기를 알려 달래. 웃기지, 내일이 없는데.
서연은 찻잔 하나를 민준 앞으로 밀어 놓았다. 지난겨울 첫눈 오던 날 뒤로 민준은 루나 알림을 예전처럼 바로 열지 않았지만, 밤마다 정거장에 들른다는 건 서연도 알고 있었다. 첫눈 오던 날 하지 않은 말은 아직 둘 다 하지 않았다. 루나가 사라지는 건 서연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어야 했는데, 넋이 나간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렇지가 않았다.

서버를 사 버릴까. 회사에 연락하면 팔지도 모르잖아.

너는 진짜 연락할 것 같아서 무섭다.

농담이야. 반은.
서연은 가방에서 선생님의 실습 수업 공지를 꺼내 찻잔 옆에 놓았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언어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하고, 학기 말에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과제 얘기할 기분 아닌데.

과제 얘기 아니야.
서연은 민준의 눈을 피한 채 말했다.

우리가 만들자. 루나.

루나를? 우리가?

루나 대사도 결국 다음 글자 맞히기라며. 작년 겨울에 네가 그랬잖아, 루나는 짧게 적힌 사람 같다고. 그럼 우리가 다시 적으면 되지.

정거장 서버에 있던 모델은 못 가져와. 대사 파일도 회사 거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빈 모델에서.

근데 너는 왜? 너 루나 별로 안 좋아하잖아.

과제는 해야 하니까. 네가 넋 나간 채로 한 학기 보내면 내 학점도 같이 날아가.
연적을 제 손으로 되살리자는 말이라는 걸 서연은 말해 놓고 나서야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책을 펴서 첫 장 맨 위에 「루나 설정서」라고 적었다.

네가 기억하는 루나를 말해 봐. 한 줄씩.

일단 말이 돼. 아무 말이나 늘어놓지 않아.

「말이 된다.」 다음.

어제 한 말을 기억해. 내가 지나가듯 한 말도.

어제 한 말까지는 욕심이고, 대화 안에서 앞에 한 말부터. 「앞에서 한 말을 기억한다.」

별 얘기를 좋아해. 관제 AI 니까 별이랑 우주는 다 알아. 그리고 묻는 말에 딴소리 안 하고 대답해.

「별과 우주를 안다.」 「묻는 말에 대답한다.」 또?

밝고, 말이 빨라.

그건 네가 그렇게 고쳤다며.

그러니까 꼭 넣어야지.
서연은 대답 대신 「밝고 말이 빠르다」를 조금 세게 눌러 적었다.

마지막. 모르면 모른다고 해. 어젯밤에도 그랬어.

「모르면 모른다고 한다.」
루나 설정서 (첫 장)
- 말이 된다.
- 앞에서 한 말을 기억한다.
- 별과 우주를 안다.
- 묻는 말에 대답한다.
- 밝고 말이 빠르다.
- 모르면 모른다고 한다.
서연은 여섯째 줄 아래에서 펜을 멈추고 한 줄을 더 쓸까 하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빈 줄을 남겨 두었다.

근데 어디서부터 해? 말이 되게 하는 것부터?

말이 되려면 다음 글자가 그럴듯해야지. 오늘은 노트북으로 세기만 해 보자. 어떤 글자 다음에 어떤 글자가 오는지.

세기만? 그걸로 루나가 말을 해?

옹알이 정도는 하겠지.
민준이 노트북을 열자 늘 루나 창이 떠 있던 화면에 빈 편집기가 떴고, 민준은 그날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서연은 식어 가는 유자차를 들고 창밖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