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면 위의 직선은 뭔가

출발 문제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다면, 좌석 앞 모니터에 뜬 비행경로가 이상하게 북쪽으로 크게 휘어져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알래스카 근처를 지나가는 이 경로는 세계지도 위에 직선으로 그은 경로보다 훨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구본 위에서 두 도시 사이에 실을 팽팽히 당겨 보면, 실은 바로 이 휜 경로를 따라 놓인다.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 위에 그린 두 경로. 빨간 선은 지도 위에서 곧게 그은 길(항정선), 파란 곡선은 지구본 위에서 실을 팽팽히 당긴 길이다. 지도에서는 파란 길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짧다.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 위에 그린 두 경로. 빨간 선은 지도 위에서 곧게 그은 길(항정선), 파란 곡선은 지구본 위에서 실을 팽팽히 당긴 길이다. 지도에서는 파란 길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짧다.

메르카토르 지도는 고위도를 크게 늘려 그린 지도라서, 그 위의 곧은 선이 지구 위에서도 곧은 길이라는 보장이 없다. 실을 당긴 길은 대원(구의 중심을 지나는 평면이 구면과 만나서 생기는 큰 원)의 일부이고, 늘어난 지도 위에서는 휘어져 보인다.

이 사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곡면 위에서 "직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평면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정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 개념이, 휘어진 공간에서는 전혀 자명하지 않다. 실을 팽팽하게 당기면 직선이 된다고? 구면 위에서 실을 팽팽히 당기면 대원이 된다. 그러면 대원이 "구면 위의 직선"인가?

더 생각해 보면 질문은 복잡해진다. 안장 모양의 곡면에서는? 도넛(토러스) 위에서는? 곡면의 형태가 달라질 때마다 "직선"의 의미가 바뀐다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일된 정의가 있을까?

측지선: 핸들을 꺾지 않고 가는 길

곡면 위의 "직선"을 정의하려면, 평면의 직선이 무엇 때문에 직선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유클리드 평면에서 직선의 성질을 곰곰이 생각하면, 두 가지 독립적인 특성이 보인다.

첫째, 직선은 최단경로다. 두 점 사이를 잇는 모든 곡선 중에서 길이가 가장 짧은 것이 직선이라는 이 첫째 성질은 "실을 팽팽히 당기면 직선이 된다"는 직관과 맞닿아 있다. 둘째, 직선은 가속도가 0인 곡선이다. 직선 위를 등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는 가속도(방향의 변화율)가 0이기 때문에 핸들을 돌릴 필요가 없다. 이 둘째 성질은 "관성의 법칙"과 같은 말이다: 바깥에서 미는 힘이 없으면 직선으로 간다.

평면에서는 이 두 성질이 동일한 곡선(직선)을 정의하므로 구별할 필요가 없지만, 곡면 위로 가면 두 성질을 따로 일반화해야 한다. 먼저 “가속도 0” 쪽부터 가 보자. 곡면 위에서 가속도가 0이라는 것은, 곡선의 접선벡터(진행 방향)를 곡선 자신을 따라 평행이동(곡선을 따라 돌리지 않고 옮기기)했을 때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걸어가면서 진행 방향을 “돌리지 않고” 들고 가는 것이다.

개미의 직진

개미가 곡면 위를 걸어간다고 하자. 개미는 곡면 밖을 볼 수 없는 관찰자라서 자기가 서 있는 바로 그 부분의 곡면만 느낄 수 있고, 3차원 공간에서 곡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이 개미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틀지 않고 가능한 한 직진하겠다고 결심하면, 개미가 걷는 경로가 곡면 위의 직선이다. 개미는 자신이 직진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3차원에서 바라보면 경로가 휘어져 있을 수 있다.

측지선(관성의 길, Geodesic)은 접선벡터를 자기 자신을 따라 평행이동해도 변하지 않는 곡선이다. 식으로는 ∇γ′γ′=0\nabla_{\gamma'}\gamma' = 0으로 쓴다. ∇\nabla는 공변미분(좌표축이 점마다 돌아가서 생기는 성분 변화를 뺀 미분)이고, 식 ∇γ′γ′=0\nabla_{\gamma'}\gamma' = 0은 진행 방향 γ′\gamma'을 진행 방향으로 공변미분하면 0이라는 말, 즉 진행 방향이 곡면 위에서 조금도 돌지 않는다는 뜻이다. 곡면 위에서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하는 이 경로는 구면에서는 대원, 평면에서는 직선이 된다.

출발 문제에서 물은 도넛(토러스) 위에서 핸들을 꺾지 않고 걸으면 이런 길이 된다. 바깥 3차원에서 보면 휘어져 있지만, 곡면 안에서만 보는 관찰자에게는 가능한 한 똑바로 걸은 길이다.
출발 문제에서 물은 도넛(토러스) 위에서 핸들을 꺾지 않고 걸으면 이런 길이 된다. 바깥 3차원에서 보면 휘어져 있지만, 곡면 안에서만 보는 관찰자에게는 가능한 한 똑바로 걸은 길이다.

문제 1: 휴지심의 비스듬한 이음매

확인 둘레 12 cm, 높이 10 cm인 휴지심(원기둥)의 옆면에 비스듬한 이음매가 있다. 이음매는 아래 테두리의 한 점에서 출발해 옆면을 꼭 한 바퀴 감으며 올라가 위 테두리에 닿는다. (가) 개미가 이음매를 따라 걸으면 몇 cm를 걷는가? (나) 걷는 동안 개미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는가?

문제 1의 휴지심. 둘레 12 cm, 높이 10 cm인 원기둥의 옆면을 이음매(청록)가 아래 테두리에서 위 테두리까지 꼭 한 바퀴 감아 오른다. 점선은 원기둥 뒤쪽이다
문제 1의 휴지심. 둘레 12 cm, 높이 10 cm인 원기둥의 옆면을 이음매(청록)가 아래 테두리에서 위 테두리까지 꼭 한 바퀴 감아 오른다. 점선은 원기둥 뒤쪽이다

같이 풀기 세션 1

김민준 M01
김민준

한 바퀴 도는 데 12 cm, 올라가는 데 10 cm니까 22 cm요. 그리고 빙빙 돌며 올라갔으니까 계속 한쪽으로 틀었죠.

선생님 T01
선생님

휴지심을 이음매 말고 세로로 곧게 한 줄 가위로 자른 다음 펴 보면 무슨 모양이 돼요?

김민준 M07
김민준

가로 12 cm, 세로 10 cm인 직사각형이요. 이음매는 한 모서리에서 맞은편 모서리로 가는 대각선이 되고요. 그럼 122+102≈15.6\sqrt{12^2 + 10^2} \approx 15.6 cm예요. 옆으로 가는 것과 위로 가는 것을 동시에 했으니 따로 더하면 안 됐네요.

이서연 S01
이서연

(나)도 펴 놓은 그림에서 보면 돼. 대각선은 곧은 선이니까 개미는 한 번도 안 틀었어. 종이를 펴도 늘거나 줄지 않으니까, 개미가 곡면 위에서 느끼는 길이와 방향은 원기둥 위에서나 펴 놓은 종이에서나 똑같아.

선생님 T01
선생님

맞아요. 바깥에서 보면 빙빙 도는 것 같아도 곡면 위를 걷는 개미에게는 곧은 길이에요.

김민준 M01
김민준

물리 과제에서 동쪽으로 간 거리와 북쪽으로 간 거리를 그냥 더했다가, 조교님이 "동시에 간 건 피타고라스로 합치세요"라고 적어 주셨던 거랑 같은 실수네요.

문제 2: 원기둥 위의 세 곡선

확인 원기둥 옆면 위의 세 곡선 (가) 세로 모선(옆면을 위아래로 곧게 지나는 직선) (나) 수평 원 (다) 일정한 기울기로 감아 올라가는 나선 중 측지선인 것을 모두 고르라.

문제 2의 세 곡선. (가) 세로 모선 (나) 수평 원 (다) 일정한 기울기로 감아 올라가는 나선. 점선은 원기둥 뒤쪽이다
문제 2의 세 곡선. (가) 세로 모선 (나) 수평 원 (다) 일정한 기울기로 감아 올라가는 나선. 점선은 원기둥 뒤쪽이다

같이 풀기 세션 2

김민준 M01
김민준

(가)랑 (다)요. (다)는 아까 문제 1의 휴지심 이음매랑 같으니까요. 그런데 (나) 수평 원은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잖아요. 한 바퀴 돌면 방향이 360° 바뀌는데 그걸 직선이라고 하긴 좀 그렇죠.

이서연 S01
이서연

원기둥을 세로로 한 줄 잘라서 펴 봐. 수평 원은 직사각형의 가로 선분이 돼.

선생님 T01
선생님

민준 학생, 원기둥 위를 기어가는 개미는 3차원을 볼 수 있을까요? 방향이 360° 바뀌었다는 건 누가 본 거죠?

김민준 M07
김민준

아니요, 자기가 선 곡면밖에 못 보죠. 360° 돈 건 바깥에서 본 방향이에요. 펴 놓으면 가로 선분이니까 개미는 한 번도 안 꺾은 거고… 셋 다 측지선이네요.

선생님 T01
선생님

맞아요. 3차원에서 휘어 보이는 건 곡면이 휘어서지, 곡선이 방향을 튼 게 아니에요.

김민준 M01
김민준

발표 자료에 그래프를 로그 스케일로 붙였더니 조교님이 "곡선이 휜 게 아니라 축이 휜 거"라고 하셨던 거랑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