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에너지와 경우의 수의 환율
평형에서 두 계가 반드시 같은 값을 갖는 양, 곧 ln W를 에너지로 미분한 기울기가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으로 "평형에서 같아지는 것"을 이미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온도다. 그렇다면 온도계가 재는 온도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역사: 온도계는 있었지만 온도의 정의는 없었다
온도는 오랫동안 "온도계가 가리키는 값"으로만 정의되었고, 온도계가 정확히 무엇을 재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온도계는 만들어졌고 눈금도 정해졌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 무엇이 문제였는지가 드러난다.
18세기에 들어 파렌하이트는 수은 온도계와 그 눈금을 내놓았고(1720년대), 셀시우스는 1742년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를 100칸으로 나누었다. 흥미롭게도 셀시우스의 원래 눈금은 끓는점이 0, 어는점이 100이었다. 지금처럼 어는점을 0으로 뒤집은 눈금은 이듬해 프랑스의 크리스탱이 따로 내놓았고, 스웨덴에서는 셀시우스가 세상을 떠난 뒤 린네가 뒤집어 쓰면서 퍼졌다.

눈금이 정해지자 곧 곤란한 문제가 드러났다. 수은 온도계와 알코올 온도계를 0도와 100도에 똑같이 맞춰 두어도, 그 사이 온도에서는 두 온도계가 조금씩 다른 값을 가리켰던 것이다. 두 액체가 온도에 따라 늘어나는 비율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온도인가? 온도를 온도계로 정의하는 한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켈빈은 1848년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특정 물질에 기대지 않는 온도 눈금을 제안했다. 그는 카르노의 열기관 효율을 이용해 온도를 정의했고, 이것이 오늘날 쓰는 켈빈(K) 눈금이 되었다. 다만 이 정의도 "가상의 열기관"이라는 장치를 거쳐야만 온도에 닿는다는 점에서, 온도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온도계가 쓸모 있는 이유도 한번 따져 볼 만하다. 물체 A가 C와 열평형(맞닿아 두어도 한쪽으로 쏠린 열의 흐름이 없는 상태)이고 B도 C와 열평형이면, A와 B도 서로 열평형이다. 이 사실 덕분에 온도계 C 하나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비교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제1법칙(에너지 보존)과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보다 늦은 1930년대에야 이름이 붙었는데, 그 둘보다 더 기본적이라는 뜻에서 영번째 법칙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온도계도 열기관도 없이, 물체 안에서 에너지가 나뉘는 방식만 보고 온도를 정할 수는 없을까? 두 계가 에너지를 나눠 가질 때 평형에서 같아지는 기울기, 곧 에너지를 조금 더 받을 때 ln W가 늘어나는 양을 이미 얻었으니, 이제 그것으로 온도를 정의해 보자.
정의: 기울기와 그 역수
평형에서 같아지는 그 기울기에 이제 이름을 붙이자. 로그 경우의 수를 에너지로 미분한 값을 역온도 β (경우의 수 증가율, inverse temperature)라 하고, 그 역수를 온도 T (에너지와 경우의 수의 환율, temperature)라 한다.
둘째 식의 S는 엔트로피, 곧 경우의 수의 로그에 볼츠만 상수 k를 곱한 S = k ln W다. ln W는 단위가 없는 순수한 수라서 이것을 열역학의 단위 J/K로 옮기는 환산 상수가 k(1.38 × 10⁻²³ J/K)이고, ML에서는 k = 1로 둔다.
β는 에너지를 조금 더 넣었을 때 ln W가 늘어나는 비율이므로, 그 역수인 kT는 "경우의 수를 e배로 늘리는 데 드는 에너지"라고 읽을 수 있다. 에너지를 경우의 수로 바꾸는 환율인 셈이다. 이때 부피와 입자 수는 고정한 채로 미분하므로, 고정한 것을 밝혀 쓰면 1/T = (∂S/∂E)_{V,N}이다.

물론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이 양이 온도계가 재는 온도와 같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같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첫 번째 근거는 온도계가 쓸모 있는 이유, 곧 영번째 법칙이다.
영번째 법칙이 정의에서 나온다
두 계가 평형에 이르면 β가 같아진다는 것은 덩어리를 나눠 갖는 두 계에서 이미 보았다. 더구나 "같다"는 관계는 건너서도 성립하므로(이행성), A와 C의 β가 같고 B와 C의 β가 같으면 A와 B의 β도 같다. 영번째 법칙을 따로 가정할 필요 없이 정의에서 바로 얻는 것이다.
kT는 얼마나 큰가
환율이 얼마인지 실제 숫자로 확인해 두면 감을 잡기 쉽다.
| 값 | 실온(300K)에서 |
|---|---|
| kT (분자 하나) | 약 4.1 × 10⁻²¹ J |
| kT (전자볼트) | 약 0.026 eV |
| kT × 아보가드로수 (1몰) | 약 2.5 kJ/mol |
탄소와 탄소를 잇는 결합 하나를 끊는 데는 여러 분자에서 잰 값을 평균해 대략 350 kJ/mol(결합 1몰당)이 드는데, 이는 실온 kT의 약 140배다. 실온에서 플라스틱이 저절로 분해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변화가 열만으로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지는, 그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가 kT의 몇 배인지를 보고 가늠한다.
문제 3. 온도는 칸 하나의 평균 에너지인가
칸이 50개씩인 두 계 A, B가 에너지 덩어리를 나눠 갖는다. 덩어리가 모두 10개, 100개, 400개일 때, 가장 흔한 분배에서 A의 β(덩어리 하나를 더 받을 때 ln W_A가 늘어나는 양)를 구하라. 그 역수 kT를 덩어리 몇 개로 읽을 수 있는지 적고, 칸 하나당 덩어리 수와 견주라. (풀어 본 뒤 위젯 1의 「문제 3 불러오기」로 확인해 보자.)

온도가 높으면 에너지가 많은 거니까, 온도는 결국 칸 하나의 평균 에너지 아니에요? 칸당 덩어리가 0.1개, 1개, 4개니까 kT도 덩어리 0.1개, 1개, 4개요.

kT를 무엇으로 정의했죠? 정의대로 β부터 계산해 볼까요.

두 계가 똑같으니까 가장 흔한 분배는 반반이고, A는 5개, 50개, 200개를 가져요. 그다음은 ln W(50, q_A + 1) − ln W(50, q_A)를 코드로 돌리면 되고요.

코드 없이도 돼. 이항계수를 풀어서 나누면 W(N, q + 1)/W(N, q) = (q + N)/(q + 1)이니까, β = ln((q + N)/(q + 1))이야.

그럼 ln(55/6) ≈ 2.22, ln(100/51) ≈ 0.673, ln(250/201) ≈ 0.218. kT는 역수니까 덩어리 0.45개, 1.49개, 4.58개예요. 칸당 덩어리 수랑 안 맞네요.

덩어리가 많을 때는 4.58 대 4로 비슷한데, 적을 때는 0.45 대 0.1로 네 배 넘게 차이 나요. 온도가 평균 에너지라는 말은 언제 맞는 거예요?

칸당 덩어리가 0.1개일 때 칸들이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 봐요.

칸 10개 가운데 아홉은 비어 있어요. 덩어리 하나를 채울 만큼의 에너지도 돌아오지 않는 칸이 대부분이라, 칸당 에너지가 kT보다 훨씬 작아지는 거네요. 아인슈타인이 차가운 다이아몬드에서 본 게 이거였군요.

맞아요. 온도는 평균 에너지를 재는 양이 아니라 에너지와 경우의 수를 바꾸는 환율이에요. 덩어리가 넉넉해서 에너지가 거의 연속처럼 오갈 때에만 칸당 에너지가 kT에 가까워져요.

평균만 보고 판단했다가 틀린 거네요. 과제 평균 점수가 같다고 반 분위기가 같은 게 아니라고 조교님이 그랬는데, 칸 대부분이 비어 있는지부터 봐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