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온도

2준위계: 에너지에 천장이 있는 계

지금까지 만난 아인슈타인 고체와 이상기체는 에너지를 넣을수록 담는 방법의 수가 끝없이 늘었는데, 에너지를 받아 줄 자리가 위로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자 하나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두 값뿐이어서, 모든 입자가 높은 쪽에 올라가면 더는 에너지를 받을 수 없는 계도 있다. 온도를 「경우의 수가 에너지에 따라 늘어나는 기울기」로 정의했으니, 이렇게 에너지에 천장이 있는 계에서는 그 기울기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 두 방향만 가진 원자

원자 안에는 작은 자석이 들어 있다고 여겨졌지만, 그 자석이 아무 방향이나 가리킬 수 있는지는 1920년대 초까지 논란거리였다. 방향이 자유롭다면 원자들을 한 줄로 쏘아 불균일한 자기장(자석의 힘이 미치는 공간, magnetic field)에 통과시켰을 때,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휘어서 흐름이 한 줄의 띠로 번져야 한다. 반대로 몇 가지 방향만 허락된다면 흐름은 그 수만큼의 갈래로 끊어져야 한다.

192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테른과 게를라흐가 이 실험을 했다. 전기로에서 은을 달궈 증발시킨 원자의 흐름을 자기장에 통과시켜 유리판에 쌓았더니, 흐름은 띠로 번지지 않고 딱 두 갈래로 갈라졌다. 판에 쌓인 은은 너무 얇아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싼 시가를 피우던 슈테른의 입김에 섞인 황이 은과 만나 검은 황화은이 되면서 두 줄이 드러났다고 전해진다. 나중에 이 두 갈래는 원자 속 전자가 품은 작은 자석, 곧 스핀(spin)이 자기장에 대해 두 방향만 가질 수 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원자핵의 스핀도 두 방향만 갖는 계여서, 1940년대에 핵자기공명(NMR)이 개발된 뒤로는 실험실에서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는 두 상태 계가 되었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다시 그린 그림. 전기로에서 나온 은 원자의 흐름이 불균일한 자기장을 지나 유리판에 닿는다. 작은 자석의 방향이 자유롭다면 한 줄의 띠로 번져야 했지만(오른쪽 판, 예상), 실제로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왼쪽 판, 실제).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다시 그린 그림. 전기로에서 나온 은 원자의 흐름이 불균일한 자기장을 지나 유리판에 닿는다. 작은 자석의 방향이 자유롭다면 한 줄의 띠로 번져야 했지만(오른쪽 판, 예상), 실제로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왼쪽 판, 실제).

네 가지 실제 계, 하나의 모형

이런 계는 생각보다 흔하다. 아래 표는 두 상태만 신경 쓰면 되는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실제 계 두 상태 두 상태의 에너지 차 ε 어디서 만나나
자기장 속 전자나 원자핵의 스핀 자기장과 같은 방향 / 반대 방향 자기장의 크기에 비례 상자성체의 자화, MRI
원자의 두 에너지 값(준위) 가장 낮은 상태(바닥상태) / 에너지를 받아 올라간 상태(들뜬 상태) 원자가 내놓는 빛 알갱이(광자) 하나의 에너지 레이저, 원자시계
초전도 큐비트 0 / 1 마이크로파 광자 하나의 에너지 양자컴퓨터
이징 모형, 볼츠만 머신의 유닛 꺼짐 / 켜짐 (또는 −1 / +1) 유닛 하나를 켤 때 드는 에너지 ML의 에너지 기반 모형

표의 예들에서 세부를 걷어 내면 같은 모형이 남는다. 입자 N개가 각각 에너지 0 또는 ε만 가질 수 있는 계다. 이런 계를 2준위계 (에너지 값이 둘뿐인 계, two-level system)라 한다.

2준위계는 에너지에 천장이 있는 계 가운데 가장 단순해서, 경우의 수를 이항계수 하나로 셀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계에 온도의 정의 ∂ln W/∂E를 그대로 적용하면 어떤 값이 나올까?

들떠 있는 비율과 β

2준위계에 에너지를 조금씩 넣어 가면 β는 어떻게 변할까? 입자 8개짜리로 먼저 세어 보자. 에너지를 ε 하나 넣을 때마다 들떠 있는 입자(에너지 ε를 가진 입자)가 하나씩 늘고, 들떠 있는 입자가 n개인 배치의 수는 8개 가운데 n개를 고르는 C(8, n)이다.

입자 8개짜리 2준위계에서 3개가 들떠 있는 배치 하나. 에너지 0인 낮은 쪽에 5개, 에너지 ε인 높은 쪽에 3개가 있고, 어느 입자가 들뜰지 고르는 방법은 C(8, 3) = 56가지다.
입자 8개짜리 2준위계에서 3개가 들떠 있는 배치 하나. 에너지 0인 낮은 쪽에 5개, 에너지 ε인 높은 쪽에 3개가 있고, 어느 입자가 들뜰지 고르는 방법은 C(8, 3) = 56가지다.
들떠 있는 수 n 배치의 수 C(8, n) 하나 더 들뜰 때 ln W 변화
0 1 +2.08
1 8 +1.25
2 28 +0.69
3 56 +0.22
4 70 −0.22
5 56 −0.69
6 28 −1.25
7 8 −2.08
8 1 (더 들뜰 입자가 없다)

에너지 ε 하나를 더 넣을 때 ln W가 늘어나는 양이 곧 β × ε이다. 표를 보면 들떠 있는 입자가 적을 때는 이 값이 크고 양수이다가, 절반인 4개를 넘는 순간부터 음수가 된다. 배치의 수 C(8, n)이 n = 4에서 가장 크고 그 뒤로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들뜬 입자가 절반을 넘으면 오히려 「들뜨지 않은 입자를 고르는 방법」이 줄어드는 셈이다.

입자가 많을 때는 이 계산을 식으로 쓸 수 있다. n개가 ε를 가지면 E = nε이고 경우의 수는 W = C(N, n)이므로, 스털링 근사(n이 클 때 ln n!을 n ln n − n으로 어림하는 방법)를 써서 미분하면 다음을 얻는다(유도는 아래 문제 7).

β=∂ln⁡W∂E=1εln⁡N−nn\textcolor{#8c564b}{\beta} = \frac{\partial \ln \textcolor{#d62728}{W}}{\partial \textcolor{#ff7f0e}{E}} = \frac{1}{\textcolor{#ff7f0e}{\varepsilon}} \ln \frac{\textcolor{#1f77b4}{N} - \textcolor{#17becf}{n}}{\textcolor{#17becf}{n}}
β2준위계의 역온도W들떠 있는 입자를 고르는 경우의 수E계 전체의 에너지ε입자 하나가 들떠 있을 때의 에너지N입자의 개수n그중 들떠 있는 입자의 개수\begin{array}{ll} \textcolor{#8c564b}{\beta} & \text{2준위계의 역온도} \\ \textcolor{#d62728}{W} & \text{들떠 있는 입자를 고르는 경우의 수} \\ \textcolor{#ff7f0e}{E} & \text{계 전체의 에너지} \\ \textcolor{#ff7f0e}{\varepsilon} & \text{입자 하나가 들떠 있을 때의 에너지} \\ \textcolor{#1f77b4}{N} & \text{입자의 개수} \\ \textcolor{#17becf}{n} & \text{그중 들떠 있는 입자의 개수} \end{array}
들떠 있는 비율 n/N β 온도 T
0에 가까움 +∞에 가까움 0K에 가까움
1/2 미만 양수 양수
정확히 1/2 0 ∞
1/2 초과 음수 음수
1에 가까움 −∞에 가까움 0에 가까운 음수

문제 7. 2준위계의 β

입자 N개 중 n개가 에너지 ε를 갖는다(E = nε). ln C(N, n) ≈ N·h(n/N)을 이용해 β = ∂ ln W/∂E를 구하라. h(p) = −p ln p − (1−p) ln(1−p). (이 어림식은 스털링 근사에서 나오며 N이 클 때 맞는다. h(p)는 앞면 확률이 p인 동전 하나의 엔트로피다.)

김민준 M11
김민준

n으로 미분하면 d/dn [N·h(n/N)] = ln((N − n)/n). 이게 β예요.

선생님 T12
선생님

무엇으로 미분하라고 했죠?

김민준 M04
김민준

E요. E = nε니까 ∂/∂E = (1/ε)∂/∂n. β = (1/ε) ln((N − n)/n).

선생님 T14
선생님

단위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β는 ln W(순수한 수)를 에너지로 나눈 것이니 1/에너지 단위여야 해요. 1/ε가 그 역할이에요.

이서연 S11
이서연

저는 p = n/N로 두고 h(p)를 p로 미분했어요. β = (N/ε) ln((1 − p)/p)가 나왔어요.

선생님 T02
선생님

좋은 방법인데 dp/dn = 1/N을 빠뜨렸어요.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입자 수도 두 배, 들떠 있는 수도 두 배로 계를 키우면 β는 어떻게 돼야 할까요?

이서연 S07
이서연

β가 온도의 역수니까… 같은 상태를 두 배로 키운다고 온도가 바뀌면 안 되죠. 제 식은 β가 두 배가 돼요. 틀렸네요.

선생님 T14
선생님

30도 물 두 컵을 합치면 60도가 되는 식을 쓴 셈이에요. 시강 변수 자리에 N이 남으면 어딘가 틀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