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 하나로는 지구를 담을 수 없다

출발 문제

오렌지 하나를 떠올려 보자. 껍질을 벗겨서 식탁 위에 평평하게 펴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반드시 찢어진다. 억지로 펼치면 어딘가가 겹치고, 어딘가가 늘어나고, 어딘가가 구겨진다. 구면의 껍질을 평면 위에 왜곡 없이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면을 평면에 펼치면 반드시 찢어지거나 늘어난다 — Goode 도법은 이 사실을 "오렌지 껍질" 모양으로 보여준다

지도 제작자들은 이 사실을 수백 년간 체감해 왔다. 16세기 항해가들에게 정확한 세계지도는 생사의 문제였다. 1569년, 플랑드르의 지리학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는 유명한 메르카토르 도법을 발표한다. 이 지도에서 항해사는 직선으로 코스를 그으면 되므로 항해에 편리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실제로는 아프리카가 14배 넓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세계지도 — 극지방으로 갈수록 면적 왜곡이 심해진다

메르카토르 도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도법을 쓰든 왜곡은 피할 수 없다. 면적을 보존하면 각도가 틀어지고, 각도를 보존하면 면적이 뒤틀린다. 거리, 면적, 각도를 동시에 보존하는 세계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 불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완벽한 지도 한 장이 불가능하다면, 여러 장의 불완전한 지도로는 어떨까?

패턴

실제로 우리는 이미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세계지도책(atlas)을 펼쳐 보라. 한 장에 전 세계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 각각의 지역을 별도의 페이지에 그린다. 각 페이지에서는 왜곡이 작다. 해당 지역 안에서는 거리와 방향이 대체로 정확하다.

문제는 겹치는 부분이다. 유럽 지도와 아시아 지도가 만나는 곳 — 터키 근처 — 에서, 같은 도시가 두 장의 지도에 모두 나타난다. 이스탄불은 유럽 지도에서는 오른쪽 끝에, 아시아 지도에서는 왼쪽 끝에 있다. 유럽 지도의 좌표 (x1,y1)(x_1, y_1)과 아시아 지도의 좌표 (x2,y2)(x_2, y_2)는 다르지만, 둘 다 같은 장소를 가리킨다.

여기서 핵심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1. 각 조각은 평면처럼 다룰 수 있다. 충분히 작은 영역에서는 지구 표면이 사실상 평평하다. 동네 지도에서 곡률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2. 조각들이 겹치는 곳에서는 번역 규칙이 있어야 한다. 유럽 좌표를 아시아 좌표로, 또는 그 반대로 변환하는 함수가 있어야 한다. 이 함수는 부드러워야(미분 가능해야) 한다 — 갑자기 좌표가 점프하면 곤란하니까.

  3. 이 번역 규칙들이 서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 A → B → C로 가든, A → C로 직접 가든, 결과는 같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학자들이 "매니폴드"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 아이디어다. 한 장의 완벽한 지도 대신, 여러 장의 부분 지도와 그것들 사이의 번역 규칙을 들고 다니는 것.

비디오 게임에서 더 친숙한 예를 들어 보자. 팩맨에서 캐릭터가 화면 왼쪽 끝으로 나가면 오른쪽에서 나타난다. 위로 나가면 아래에서 나타난다. 화면은 직사각형이지만, 이 “감기(wrapping)” 규칙 때문에 팩맨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은 토러스(도넛 표면)이다. 화면의 좌표 (x,y)(x, y)는 토러스의 한 차트이고, 감기 규칙은 전이함수이다.

직사각형의 맞은편 변을 이으면 토러스가 된다 — 팩맨 화면의 "감기" 규칙이 만드는 위상

정리

이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소적으로 Rn\mathbb{R}^n처럼 보이는 공간은, Rn\mathbb{R}^n으로의 좌표 사상들(차트)의 모음과 겹치는 영역에서의 부드러운 변환 규칙(전이함수)으로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

여기서 "국소적으로 Rn\mathbb{R}^n처럼 보인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따져야 한다. 두 가지 기술적 조건이 필요하다:

이 두 조건은 처음 보면 기술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들이 없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일(미분, 적분, 곡률 측정)이 불가능해진다. 무대에서 연극을 하려면 무대가 너무 기울어져 있으면 안 되고(하우스도르프), 무대가 무한히 넓으면 안 되는 것(제2가산)과 비슷하다.

정의

이제 정확한 정의를 적을 준비가 되었다. 각 정의가 위의 이야기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며 읽어 보라.

입체사영: 북극에서 빛을 비추면 구면의 점이 평면 위의 점으로 대응된다

구면 S2S^2를 예로 들자. 북극과 남극을 각각 제외한 두 개의 열린 집합을 잡고, 입체사영(stereographic projection)으로 각각을 R2\mathbb{R}^2에 대응시키면 된다. 두 차트가 겹치는 영역(북극과 남극을 모두 제외한 부분)에서의 전이함수는 φ2φ11(x,y)=1x2+y2(x,y)\varphi_2 \circ \varphi_1^{-1}(x, y) = \frac{1}{x^2 + y^2}(x, y) — 반전(inversion)이다. 이것은 원점을 제외하면 무한히 미분 가능하므로, 이 아틀라스는 부드럽다.

핵심 인물과 일화

베른하르트 리만 (Bernhard Riemann, 1826–1866)

리만의 초상

1854년 6월 10일, 괴팅겐 대학교. 스물일곱 살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교수자격 취득을 위한 강연 무대에 선다. 청중 속에는 그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앉아 있다.

관례상 후보자는 세 가지 주제를 제안하고, 심사위원회가 그중 하나를 고른다. 리만은 세 번째 주제를 "기하학의 기초에 놓여 있는 가설에 대하여(Über die Hypothesen, welche der Geometrie zu Grunde liegen)"라고 적어 넣었다 — 가장 선택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우스가 정확히 그 주제를 골랐다. 이 선택은 리만을 몇 주간의 고뇌로 몰아넣었지만, 결과적으로 수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연 중 하나가 탄생한다.

리만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기하학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다. 공간이란 국소적으로 좌표를 붙일 수 있는 임의의 대상이며, 그 위에서 거리와 곡률은 장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 강연에서 리만은 오늘날 우리가 "매니폴드"라고 부르는 개념의 씨앗을 뿌렸다 — 전체를 하나의 좌표로 덮을 수 없지만, 조각마다 좌표를 붙이고 조각 사이의 번역 규칙을 정하면 되는 공간.

가우스는 이 강연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며 동료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리만의 아이디어가 물리학에서 꽃을 피우려면 60년이 더 필요했다 —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을 4차원 매니폴드로 기술했을 때.

리만 자신은 결핵으로 서른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강연 원고는 불과 수십 쪽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후 150년간 전개될 미분기하학의 프로그램 전체가 담겨 있었다.

시각화 아이디어

연결되는 세계들

분야 연결
위상수학 매니폴드의 위상적 분류, 오일러 수, 호몰로지
물리학 일반상대론의 시공간 = 4차원 유사-리만 매니폴드
데이터 과학 매니폴드 가설: 고차원 데이터는 저차원 매니폴드 위에 놓여 있다
로보틱스 관절 로봇의 배위공간(configuration space)은 매니폴드
통계학 확률분포의 모임 = 통계적 매니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