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휘었다"고 말하려면 무언가 곧은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종이에 그은 선이 휘었는지는 곧은 자를 대 보면 안다. 그런데 곡면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공간 바깥에서 가져올 곧은 자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에 견주어 "휘었다"고 말할까?
한 점에서 계량을 평평하게 만들기
반지름 1인 구의 북극에서 평평한 지도를 한 장 만들어 보자. 북극에서 각 방향으로 구면 위의 곧은 길(측지선)을 따라 잰 거리를 지도 위 거리로 그대로 쓴다. 북극 바로 그 자리에서는 지도의 자와 구면의 자(거리를 재는 눈금, 곧 계량)가 딱 맞는다. 조금 떨어지면 어떨까? 지도 위 반지름 0.1인 원의 둘레는 2π×0.1=0.62832인데, 구면 위 실제 둘레는 2πsin0.1=0.62727로 0.17% 짧다. 반지름 0.2에서는 0.66% 짧다. 거리를 두 배로 늘리자 어긋남이 약 네 배가 되었다. 어긋남이 거리의 제곱으로 자란다는 뜻이다.
북극에서 측지선 거리 0.1인 원. (가) 구면 위에서 잰 둘레는 2π × sin 0.1 = 0.62727. (나) 같은 거리를 그대로 옮긴 평평한 지도 위에서는 2π × 0.1 = 0.62832. 두 원의 크기 차이는 보이게 크게 과장해 그렸다
이런 지도는 북극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점 p를 잡든, 좌표를 잘 고르면 그 점에서 계량을 유클리드 형태로 만들고 1차 미분까지 모두 0으로 만들 수 있다. 1차 미분이 0이면 크리스토펠 기호도 0이다. 예컨대 구면 좌표에서는 적도 위의 점에서 Γϕϕθ=−sinθcosθ와 Γθϕϕ=cotθ가 모두 0이 되는데, 이런 일은 사실 어느 점에서나 좌표만 잘 고르면 일어난다.
이런 좌표를 리만 정규좌표(normal coordinates. 정규분포·정규화와는 무관하다)라 하고, 북극에 펼친 지도가 바로 북극에서의 리만 정규좌표다. 물리학에서는 국소 관성계(좁은 한 곳에서만 통하는 관성 좌표계)라 부른다. 자유낙하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력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 현상이다.
여기서 멈추면 "공간은 언제나 평평하다"는 결론이 나올 것 같지만, 북극 지도에서 본 대로 조금만 떨어지면 어긋남이 보인다. 1차 어긋남은 좌표로 지웠지만 2차 어긋남은 남았다. 2차 미분은 좌표를 어떻게 바꿔도 다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 않고 남는 그 양이 정확히 곡률 텐서다.
개수를 세어 보면 이 말이 숫자로 확인된다. 점 p를 원점에 두고 좌표 변환을 테일러 전개하면 x′i=Aijxj+Bijkxjxk+Cijklxjxkxl+⋯ 꼴이고, 각 차수의 계수가 계량의 같은 차수 미분을 지우는 데 쓰인다. B는 아래 두 첨자에, C는 아래 세 첨자에 대해 대칭이다.
차수
지우려는 것
개수
쓸 수 있는 계수
개수
남는 것
0차
gij(p)
2n(n+1)
A
n2
0 (여분 2n(n−1)개는 회전)
1차
∂kgij(p)
n⋅2n(n+1)
B
n⋅2n(n+1)
0
2차
∂k∂lgij(p)
(2n(n+1))2
C
n⋅6n(n+1)(n+2)
12n2(n2−1)
2차의 남는 개수를 계산하면, 「곡률의 대칭」 절에서 세 가지 대칭 관계로 센 독립 성분 수 n2(n2−1)/12(2, 3, 4차원에서 1, 6, 20개)와 똑같이 나온다.
2차원이면 9−8=1개가 남고 그것이 가우스 곡률 K 하나다. 4차원 시공간이면 100−80=20개가 남는다. 좌표를 아무리 영리하게 골라도 지워지지 않는 이 20개의 수가 시공간의 곡률이다.
리만도 1854년 강연에서 같은 종류의 셈으로 곡률의 자리를 가늠했다. n차원에서 거리를 재는 식에는 계수가 n(n+1)/2개 있는데, 좌표를 새로 고르면 n개의 조건만 맞출 수 있다. 그래서 나머지 n(n−1)/2개는 좌표가 아니라 공간 자체가 정한다고 보았다.
정리하면, 곡률의 기준은 바깥 공간이 아니라 한 점에서의 평평함을 그 이웃까지 넓히려 할 때 생기는 실패의 양이다.
문제 5 — 0점은 어떻게 환산해도 0점일까
확인 원점수(100점 만점)를 두 가지로 환산한다. (가) 10점 만점으로: 원점수 × 0.1 (나) 기본 점수 20점을 주고: 20 + 원점수 × 0.8. 원점수 0점인 학생은 각 환산에서 몇 점인가? 「이 학생은 0점이다」라는 말이 환산 방법과 상관없이 참이 되려면 환산식이 어떤 꼴이어야 하는가?
같이 풀기 세션 5
김민준
0점은 어떻게 환산해도 0점이죠. 둘 다 0점이요.
선생님
(나)의 식에 0을 넣어 볼래요?
김민준
20+0×0.8=20… 성적표에는 20점으로 찍히네요. 원점수와 상관없이 얹어 주는 20점 때문이에요.
이서연
(가)처럼 원점수에 곱하기만 하는 환산이면 0은 언제나 0으로 가. 원점수와 상관없는 항이 따로 붙는 순간, 한쪽에서 0이던 것이 다른 쪽에서는 0이 아니게 돼.
문제 6 — 원기둥의 곡률은 좌표를 바꾸면 달라질까
계산 반지름 a인 원기둥 옆면의 계량 ds2=a2dϕ2+dz2에서 리만 곡률 텐서를 구하라. 좌표를 비스듬하게 바꾸면(ξ=ϕ+z, ζ=z처럼. ξ는 크사이, ζ는 제타) 곡률 텐서가 0이 아니게 될 수 있는가? 크리스토펠 기호는 어떤가?
같이 풀기 세션 6
이서연
계량 성분이 전부 상수라서 크리스토펠 기호가 다 0이고, 성분 공식의 네 항도 0이야. 그러니까 R=0.
김민준
그건 좌표를 원기둥에 딱 맞게 골라서 그런 거 아냐? 비스듬한 좌표로 바꾸면 계량에 교차항이 생기니까 곡률도 0이 아닐 수 있잖아.
아, 상수네요. 그러면 이 좌표에서도 Γ=0이고 R=0이에요. 그래도 좌표를 더 구불구불하게 바꾸면요?
이서연
그때는 Γ는 0이 아니게 될 수 있어. 평면의 극좌표처럼. 그런데 R은 텐서라서 새 좌표의 성분이 옛 성분에 야코비안을 곱해 더한 선형 조합이야. 옛 성분이 전부 0이면 새 성분도 전부 0일 수밖에 없어.
선생님
그게 핵심이에요. Γ는 좌표가 만든 가짜 변화라 좌표를 바꾸면 생겼다 없어졌다 하지만, R은 한 좌표계에서 0이면 모든 좌표계에서 0이에요. 그래서 "휘었다/안 휘었다"를 판정하는 데 R을 쓰는 거예요.
김민준
아까 성적 환산 문제랑 같네요. R은 (가)처럼 곱하기만 하는 환산이라, 0점은 어떻게 환산해도 0점이에요.
이서연
Γ는 (나)처럼 기본 점수를 얹는 환산이고. 텐서 변환은 성분에 야코비안을 곱해서 모아 더할 뿐, 성분과 상관없는 항을 따로 얹지 않으니까 0은 0으로 가는 거고. Γ의 변환식에는 성분과 상관없는 2차 미분 항이 따로 붙어서, 0이던 것이 0이 아니게 될 수 있는 거야.
김민준
기본 점수 얹어 주는 교수님이 계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R은 기본 점수가 없는 환산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