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흐름: 곡률을 따라 계량을 흘려보내기
지금까지 리치 텐서는 곡률을 요약한 숫자 묶음이었다. 모양을 한눈에 알 수 없는 울퉁불퉁한 공간을 만나면, 그것을 고르게 다듬어 둥근 구처럼 이미 아는 모양과 견주고 싶어진다. 이 요약을 거꾸로 공간을 바꾸는 힘으로 쓸 수는 없을까? 울퉁불퉁한 곳은 펴고 둥근 곳은 고르게 만드는 방향으로 계량을 조금씩 바꿔 나간다면?
역사: 리처드 해밀턴 (Richard S. Hamilton, 1943–2024)

리치 텐서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은 리처드 해밀턴이다. 울퉁불퉁한 공간을 한 번에 고쳐 둥글게 만들 방법은 없다. 해밀턴은 계량을 시간에 따라 조금씩 흘려, 열이 퍼지듯 저절로 고르게 되도록 하는 길을 찾았다. 본보기가 있었다. 제임스 일스와 조지프 샘프슨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는 함수를 열이 퍼지듯 조금씩 바꿔 가장 고른 꼴로 데려가는 흐름을 이미 내놓았는데, 해밀턴은 같은 생각을 함수가 아니라 계량 자체에 걸었다. 1982년 논문 「양의 리치 곡률을 가진 3차원 매니폴드(Three-manifolds with positive Ricci curvature)」가 그 첫 결과다. 그 흐름의 규칙이 이 절의 주인공이다.
구면이 한 점으로 줄어드는 흐름
해밀턴의 규칙은 말로 하면 간단하다. 둥근 곳일수록(리치 곡률이 클수록) 그 방향의 눈금을 빨리 줄이고, 말안장처럼 휜 곳(리치 곡률이 음수)에서는 눈금을 늘린다. 반지름 1인 구면에 걸어 보자. 구면은 어디서나 똑같이 둥그니 어디서나 똑같이 줄어들고, 둥근 모양 그대로 작아진다. 계산해 보면 반지름의 제곱이 시간 1당 2씩 일정하게 준다.
| 시각 | 0 | 0.1 | 0.25 | 0.4 | 0.5 |
|---|---|---|---|---|---|
| 반지름의 제곱 | 1 | 0.8 | 0.5 | 0.2 | 0 |
| 반지름 | 1 | 0.894 | 0.707 | 0.447 | 0 |
| 스칼라 곡률 |
2 | 2.5 | 4 | 10 | 무한대 |
작아질수록 더 둥글어지고(곡률이 커지고), 시각 0.5에 한 점으로 사라진다. 이 규칙을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이것이 리치 흐름 (곡률 따라 계량 흘려보내기 / Ricci Flow)이다. 반지름

해밀턴은 이 흐름을 사용하여, 닫힌 3차원 매니폴드가 모든 곳에서 양의 리치 곡률을 가지면 흐름이 그것을 둥근 구(또는 구를 대칭으로 접어 만든 공간)로 데려간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3차원 매니폴드에 대해서는 곡률이 무한대로 커져 흐름을 더 이어 갈 수 없는 곳(특이점, singularity)이 생기는 문제에 가로막혔다. 해밀턴은 특이점이 생기기 직전에 목처럼 가늘어진 곳을 잘라 내고 잘린 곳을 둥글게 막은 뒤 흐름을 다시 잇는 「수술」을 구상했고, 1997년에는 4차원 매니폴드의 한 부류에서 이 방법을 실제로 썼다. 3차원에서 생길 수 있는 특이점의 모양을 모두 알아내는 일은 남아 있었다.
아래 그림은 둥근 구에 리치 흐름을 걸었을 때다. 시간을 흘려 보내면 반지름의 제곱이 일정한 속도로 줄어들고, 그동안 스칼라 곡률은 점점 커지다가 소멸 시각에 무한대로 간다. 차원을 바꾸면 소멸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 그리고리 페렐만 (Grigori Perelman, 1966–)

2002년 11월,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arXiv에 짧은 프리프린트를 올린다. 제목: “리치 흐름의 엔트로피 공식과 그 기하학적 응용.” 후속 논문 두 편이 2003년 3월과 7월에 이어진다.
페렐만은 해밀턴의 리치 흐름이 특이점에 도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완전히 분석했다. 특이점이 생기면, 해밀턴이 구상했던 대로 매니폴드를 "수술(surgery)"로 절단하고, 각 조각에서 리치 흐름을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3차원 매니폴드가 표준적인 조각들로 분해된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이 결과의 직접적 귀결이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이다: 그 위에 그린 고리를 모두 한 점으로 줄일 수 있는(단일연결, simply connected) 닫힌 3차원 매니폴드는 3차원 구와 같다. 1904년에 제기되어 100년 가까이 미해결이었던 문제가 곡률 텐서의 축약이라는 리치의 대수적 조작과 해밀턴의 기하학적 흐름, 페렐만의 해석학적 통찰의 결합으로 풀린 것이다.
페렐만은 이 업적으로 필즈상(2006)과 밀레니엄 상금(2010, 100만 달러)의 수상자로 정해졌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필즈상을 권하러 찾아온 국제수학연맹 회장 존 볼에게는 "증명이 올바르다면 다른 인정은 필요 없다"는 뜻을 밝혔고, 밀레니엄 상금을 거절할 때는 이 문제에 대한 해밀턴의 기여가 자신보다 작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문제 6 — 큰 구와 작은 구
계산 반지름 1인 구면과 반지름 2인 구면(둘 다 2차원)에 같은 순간부터 리치 흐름을 건다. 작은 구면이 한 점으로 사라지는 순간 큰 구면의 반지름은 얼마인가? 큰 구면은 언제 사라지는가? 이것으로 울퉁불퉁한 곡면에서 작고 뾰족한 혹과 크고 완만한 몸통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줄어드는지 말해 보라.
같이 풀기 세션 6

작은 구는 시각 0.5까지 반지름 1을 다 잃잖아요. 같은 속도로 줄면 큰 구도 1을 잃어서 반지름 1이요.

일정한 속도로 주는 건 반지름이 아니라 반지름의 제곱이야.

그럼 민준 학생, 같은 시간 동안 반지름으로는 두 구가 각각 얼마나 줄었죠?

작은 구는 1이 다 줄었는데 큰 구는 2에서 1.73, 0.27밖에 안 줄었어요. 같은 흐름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요?

큰 구는 언제 사라지는지도 구해 봐요.


수명이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하니까, 반지름이 몸통의 10분의 1인 혹은 100분의 1 시간이면 줄어들겠네. 둥근 곳일수록 빨리 줄인다는 규칙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혹은 따로 떨어진 구가 아니라 몸통에 붙어 있으니 이건 어림이에요. 그래도 곡률이 큰 곳이 먼저 크게 움직인다는 감각은 위의 울퉁불퉁한 곡면 그림과 맞아요.

편미분방정식 시간에 열 방정식을 풀면 뾰족한 온도 봉우리부터 먼저 무너졌는데, 그거랑 같은 모습이야.